말씀 묵상

함께 죽고 함께 살고

느티나무a 2025. 9. 14. 06:23

말씀: 로마서 6:1~7
찬송: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면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를 많이 지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선제적으로 제시한 후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역설(逆說)
바울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해결하시고 크고 놀라운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을 비판하는 자들이 그렇다면 큰 죄를 용서받을수록 은혜가 크니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 더 많은 죄를 지어야 되느냐는 반문을 합니다. 저들의 눈에 바울은 율법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며 방종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질문에 대하여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연합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과 연합하여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이 그분과 함께 자신이 죽는 장례식이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혼식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자에게 부활의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죽음의 권세보다 강하며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물리칠 수 없는 죄의 힘도 정복하고 죄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죄의 종노릇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자가 더 이상 아무 죄도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을 필연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죄에 대해 죽고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처럼 다시 죄에 매어 살지 않고 의의 도구로 쓰여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성도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흙탕물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세상에 뛰어드는 구조대원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 이시돌 목장과 은총의 동산,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