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두 개의 선택지

느티나무a 2026. 4. 1. 06:21

말씀: 마태복음 27:1~26
찬송: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예수님이 유죄판결을 받는 것을 보던 가룟 유다는 스스로 뉘우쳤으나 목메어 죽었습니다.

후회냐 회개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체포한지 몇 시간만에 불법재판을 통해 사형판결을 내렸으나 그들에게는 죽일 권한이 없기 때문에 빌라도 총독에게 데려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제서야 잘못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 목을 메어 죽습니다. 후회와 회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둘 다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하고 사도의 사명을 감당했지만, 가룟 유다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멸망한 것은 예수님을 배신한 행위보다 자기 죄를 스스로 책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냐 바라바냐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에게 죽일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바라바와 예수님을 세워놓고 한 사람을 선택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기대에 맞지않는 예수님보다 독립투사 바라바를 원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매순간 이런 선택지를 받게 됩니다. 바라바냐 예수냐? 주님은 이성(理性)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냐 군중이냐
예수님을 죽이려고하는 단호함을 본 빌라도는 민란을 두려워하여 저들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빌라도는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선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지만 빌라도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죽을 자리에서 살아난 바라바가 내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제 내가 죽어 예수님이 사는 삶, 나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김홍신문학관. 논산시 중앙로 1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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